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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Culture

조토의 스테파네스키 제단화(Stefaneschi Triptych):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저는 무교임을 밝힙니다. 제가 설명하는 종교화와 종교적 조각상들은 호기심으로 직접 찾아본 전승과 역사에 기반했습니다.

 

 
이 작품은 1320년경에 조토 디 본도네가 제작한 스테파네스키 제단화입니다. 이 제단화는 본래 구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될 용도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제단화는 교황권의 정통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전환기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제단화의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리스도로부터 성 베드로, 그리고 교황으로 흐르는 권위의 계보도입니다. 앞면 중앙의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 그리고 뒷면 중앙의 천국의 열쇠를 든 초대 교황 베드로와 그 앞에 무릎꿇은 당대 교황 첼레스티노 5세까지, 로마 교회의 정당성을 시각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중앙 패널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를 천사와 성인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오른손을 들어 축복의 제스쳐를 그리고 있고, 왼손으로 복음서를 들고 있습니다.
 

 
기독교 회화를 보다 보면 그리스도가 이와 같은 손동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손동작에는 여러 상징이 있습니다.

  1. 그리스 문자로의 예수 그리스도의 약어(IC XC)를 상징
  2. 두 개의 접힌 손가락이 각각 그리스도의 두 본성 (신성과 인성) 상징
  3. 세 개의 곧게 선 손가락이 삼위일체를 상징

 

아래에는 추기경 스테파네스키가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스테파네스키는 이 제단화를 의뢰한 추기경이기도 한데요, 중세 회화에서는 기증자 초상(Donor portrait)관습이 있었습니다. 기증자 초상은 작품을 의뢰하거나 후원한 인물을 주요 인물 옆에 그려넣는 모양인데, 르네상스 이전에는 주로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중세에는 종교화가 장식적인 목적뿐 아니라 신앙적 행위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화면 속에 등장하는 것을 일종의 영구적인 기도 행위로 이해했다고 해요.
 

좌측 패널

성 베드로가 역십자가형을 당해 순교한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 로마시대의 형벌이었는데, 왜 베드로는 십자가형이 아닌 역십자가형으로 그려질까요? 이는 베드로가 자신은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죽을 자격이 없다고 여거 역십자가형을 요청했다는 전승에서 비롯됩니다.
 
스테파네스키 제단화는 구 베드로 대성당에 장식될 용도로 제작되었는데, 구 베드로 대성당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좌측 패널의 순교 장면은 단순한 성인 삽화가 아니라, 대성당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미지로 기능합니다. 관람자는 제단 위에서 베드로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교회의 시작과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측 패널

사도 바울의 순교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베드로 모두 십자가형을 당했는데, 바울은 순교 장면이 참수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와 베드로는 로마의 시민이 아니었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민에게는 좀 더 인도적인 형벌을 가한 거죠.
 
이렇게 제단의 한 면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로마에서 순교한 두 성인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단화에는 이면이 있습니다. 이 제단화는 사실 양면화인데요, 성당의 주제단에 설치되어 한 면은 신자들, 한 면은 사제들에게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중앙 패널

이쪽 면의 중앙에는 성 베드로가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복을 입고 열쇠를 들고 있는 위엄 있는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16:19를 보면 베드로가 왜 열쇠를 들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하늘 나라의 열쇠 를 주리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성경에서는 이 말과 함께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쥐어주었습니다. 또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구절은 베드로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권한을 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권위를 위임받은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법에서는 교황을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전 교회에 대한 최고, 완전하고 보편적인 통치권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권위가 곧 교황의 권위인 셈이니, 성 베드로 성당이 왜 이렇게 의미가 있는지, 또 스테파네스키 제단화가 왜 베드로를 옥좌에 앉힌 모습으로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단화를 단순히 사도 베드로를 기념하는 작품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위임된 권위가 교황에게 계승된다는 선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중앙 패널의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도 추기경 스테파네스키가 등장한다는 점인데요, 자세히 보시면 무언가를 베드로에게 바치고 있습니다. 바로 스테파네스키 제단화 모양입니다. 그림 속의 그림인데요, 이 장치로 인해 기증 행위를 영구적으로 시각화하고, 제단이 성 베드로에게 봉헌되었음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곳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어두운 색 망토를 입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첼레스티노 5세로,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인 1313년에 교황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화면 속에 등장하는 것은, 사도 베드로로부터 이어지는 교황직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장치로 읽을 수 있습니다.
 
** 바티칸 공식 안내문에는 첼레스티노 1세라고 되어 있는데, 이탈리아어 위키피디아나 다른 자료들에서는 첼레스티노 5세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저는 작품의 제작 시기를 고려할 때 후자가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서 후자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측면 패널

측면 패널에는 성인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 패널에는 성 야곱과 성 바오로, 그리고 오른쪽 패널에는 성 안드레아와 성 요한 복음사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감상자는 이렇게 많은 백인 중년 남성의 얼굴을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식별하면 좋을까요? 바로 상징을 통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성 바오로의 경우 앞면에도 나왔었는데, 참수를 당했습니다. 따라서 성 바오로의 상징은 칼입니다. 그림에 보면 바오로가 왼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 야곱은 순례자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에 순례자의 복장과 지팡이로 표현됩니다. 야곱은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는데요, 기독교인들은 그 유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따라 성 야곱을 기리는 순례자들이 생겨나게 되고, 야곱은 순례자의 보호자라는 상징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 요한 복음사가는 요한 복음서의 저자입니다. 그래서 ‘복음사가’ 인데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젊은 제자라고 합니다. 또한 요한복음이 가장 고차원적 통찰을 지닌 신학적 복음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의 상징은 독수리입니다. 그래서 회화에 등장할때는 수염 없는 젊은 얼굴로 책이나 독수리와 함께 그려집니다.
 
다만 오른쪽 첫 번째 인물은 성 안드레아의 상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서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성 안드레아는 대각선(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X자형 십자가가 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에는 X자형 십자가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문헌들을 찾아보다 보니 답을 추론할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X자형 십자가 상징은 중세 후기까지는 표준화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초기 문헌에서는 안드레아가 예수가와 같은 라틴 십자가에 묶였다는 묘사도 존재합니다. 이후 전승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X자 형태의 십자가 이야기가 확산되고, 중세 후기에 이르러 비로소 X자형 십자가가 성 안드레아의 표준 도상으로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스테파네스키의 제단화의 성 안드레아가 X자 형태의 십자가를 들고 있지 않는 이유가 추정이 가능한데, 그려진 시점엔 1320년에는 성 안드레아의 X자형 십자가 도상이 완전히 고정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레델라

마지막으로, 프레델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프레델라는 제단화의 맨 아래에 붙는 가로형 보조 패널로, 중심이 되는 주제를 신학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앞면의 프레델라는 중앙에는 옥좌에 앉은 성모를 두고, 좌우로 열두 사도를 배치했습니다. 이 프레델라는 앞면 중앙의 그리스도 옥좌와 대응하게 됩니다.
 

뒷면의 프레델라는 현재는 한 부분만 남아 있고, 세 명의 성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중 적어도 둘은 성 스테파노와 성 라우렌시오라고 추정되는데, 구 성 베드로 대성당의 카논 공동체가 이들과 관련된 성유물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라 보이기 때문입니다. 중세 제단화는 해당 제단이 봉헌된 성인이나 그 공간에 실제로 모셔진 성유물과 연관된 성인들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만 프레델라가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식별은 문헌 기록과 전례에 근거한 추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술사적 의의

스테파네스키 재단화는 1320년경 제작된 조토의 제단화입니다. 문서로 기록이 남아 있고 의뢰자가 명확한 몇 안 되는 중세 작품 중 하나로서, 미술사적으로 정확한 사료가 되는 드문 사례입니다.
 
피렌체를 방문하셨다면 ‘조토’라는 이름이 익숙하실 텐데요. 피렌체 대성당 옆에 서 있는 조토의 종탑을 설계한 바로 그 조토가 맞습니다. 14세기에는 화가·조각가·건축가의 구분이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각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가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일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이 제단화는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중세의 전통을 유지합니다. 금박 배경은 천상 세계를 상징하고, 후광에는 펀치워크(금박 위에 도장을 찍어 장식하는 방식)가 사용되며, 중앙 인물은 주변 인물보다 압도적으로 크게 묘사됩니다. 이러한 위계적 구성은 중세 미술의 특징입니다. 또한 제단화라는 형식 자체가 전례 공간의 일부로 기능하는 중세적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토의 제단화는 동시에 르네상스적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인물은 더 이상 평면적인 상징이 아닙니다. 순교 장면에서 인물들은 실제 공간 속에서 몸을 비틀고, 서로를 바라보고, 중력을 느끼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옷 주름에는 명암이 들어가 있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음영이 표현됩니다. 이는 빛이 물체에 닿을 때 생기는 변화를 관찰한 결과입니다. 즉, 조토는 인물을 ‘신성의 기호’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스테파네스키 제단화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입니다. 중세 회화에서 인물은 흔히 정면을 응시하며 고정된 표정을 유지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고, 긴장하거나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 포착됩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도상이 아니라 인간을 묘사하려는 시도입니다.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인간입니다. 중세시대의 예술이 종교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면, 르네상스의 예술은 인간에게 집중합니다. 종교적인 상징, 장엄함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움, 실제적인 표정과 역동성,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조토의 제단화에 담긴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 변화가 아닙니다.
 
이러한 과도기적 성격 때문에,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 이탈리아 미술은 흔히 ‘전르네상스(Proto-Renaissance)’라 불립니다. 완전한 선원근법이나 고전주의적 인체 연구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몸과 감정, 공간의 현실성을 회화 안에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이 되는 예술가 중 하나가 바로 조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