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레 조 프리모디알로부터 샘플을 제공받아 작성된 후기입니다.
이번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입점한 프랑스 니치 향수, 레 조 프리모디알 팝업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레 조 프리모디알은 2015년 조향사 아르노 풀랑(Arnaud Poulain)에 의해서 생겨난 향수 브랜드입니다. 아르노 풀랑이 레 조 프리모디알 설립 전에 만든 향수들을 통해 그의 조향 철학을 엿보려고 했는데, 아르노 풀랑은 레 조 프리모디알을 통해 처음으로 조향사로 데뷔해서, 이전에 그가 만든 향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기계공학 전공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요.
해외에서는 LEP로 줄이기도 하는 "Les Eaux Primordiales"라는 이름의 뜻은 '근원적인 물'으로, 굉장히 시적입니다. 이 어구는 창립자 아르노 풀랑이 즐겨 읽던 소설 "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에서 가지고 왔다고 하는데, 생명의 시작과 근원이 되는 물에 대한 은유라고 합니다. 레 조 프리모디알의 철학 또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LEP의 근원이란 장인정신과 혁신, 진정성이라고 해요. (Craftmanship, innovation, and authenticity). 그래서인지 향수의 제작은 아르노 풀랑의 고향인 북프랑스, Arras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리적으로도 원초로 회귀한 셈입니다.

레 조 프리모디알에는 여러 가지 컬렉션이 있는데요, 메뉴로 진입하면 컬렉션마다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특히 '슈퍼매씨브' 컬렉션에서 이름에서 오는 시적인 감성이 이어지는 감상을 받았습니다.
- 슈퍼클래시크(Superclassique): 시대를 초월하여 해당 분야에서 절대적인 레퍼런스로 자리잡은 타임리스 포뮬러
- 슈퍼크리티크(Supercritique): 하이-퍼퓨머리의 가장 상징적인 꽃을 기념하는 컬렉션. 시대를 초월한 식물의 여왕이 지닌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
- 슈퍼플루이드(Superfluide): 하이-퍼퓨머리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재료들을 활용하여 뛰어난 향수를 창조하는 컬렉션. 향신료, 레진, 귀한 목재 등의 재료가 서로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어 만드는 복잡하고 풍부한 향
- 슈퍼매씨브(Supermassive): 우주론과 해양학, 수중 심해와 먼 은하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

레 조 프리모디알은 팝업이지만 마치 정식 매장처럼 꾸며져 있었어요. 앞쪽에 레 조 프리모디알의 향수들이 진열되어 있고, 안쪽에는 커다란 '앰버 슈퍼매씨브'의 보틀 모형도 보입니다.

연말 근처라 그런지 한 켠에 귀여운 트리도 있었는데, 트리의 투명한 오너먼트 안에는 레 조 프리모디알의 향수 샘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향기 나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직원분이 정말 친절하셔서, 감사하게도 많은 향을 시향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키트를 수령했습니다. 검은색 박스 안에 샘플 2종이, 투명한 오너먼트의 눈 모양 사이에 샘플 1종이 숨어있습니다.

레 조 프리모디알 향수 3종 리뷰

꿀뢰르 프리메어
레 조 프리모디알의 베스트셀러인 꿀뢰르 프리메어입니다. 슈퍼클래시크 라인에 속해 있습니다. 이름을 직역하면 '원초적인/기본적인 색'이 됩니다. 뜻이 뭘까 고민하게 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맡게 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향이 살내음이다 보니, 이런 살내음과 같이 느껴지는 향이라 이런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꿀뢰르 프리메어 노트
Top note: 알데하이드, 서양배
Middle note: 자스민, 작약, 장미꽃
Base note: 머스크, 암브록산
(공식 홈페이지 기준)
알데하이드는 합성 향료로, 특유의 밝고 깨끗한, 쨍한 공기감을 만들어주어서 비누향을 메인으로 하는 향수에 빠지지 않는 노트입니다. 향수에 쓰이면 깨끗하게 정제한 비누 같은 향을 얇게 깔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암브록산은 용연향(앰버그리스)의 핵심 톤을 실험실에서 뽑아낸 합성 향료입니다. 암브록산이 베이스에 쓰이면 달지 않게 따스하고 미네랄한 톤이 깔리게 됩니다. 살갗에 스며서 잔향이 부드럽고 은은하게 오래 가는 느낌입니다.

꿀뢰르 프리미어 향
꿀뢰르 프리미어를 처음 뿌렸을 때는 알데하이드에서 오는 비누 같은 쨍한 청결감이 느껴집니다. 직후에 서양배 향이 살짝 달콤하게 감싸서 올라오며, 첫인상의 쨍함을 조금 순화해 줍니다. 비누거품에 쌓인 초록색 서양 배조각 같은 느낌으로, 프루티한 느낌보다는 비누의 청결하고 깨끗한 인상이 더 강합니다.
살짝 시간이 지나면 배의 달콤함이 살짝 가시면서 플로럴 노트들이 올라오며, 향이 풍부하고 살짝 포근해집니다. 로즈, 작약, 자스민은 강하지 않고, 아주 옅게 공기감을 가지고 알데하이드와 섞이는데, 푸릇푸릇한 생화보다는 꽃잎을 띄운 비눗물과 같은 느낌입니다. 자스민의 크리미함도 과하게 강조되지 않고 아주 투명하게, 매끈함을 한 겹 씌운 느낌으로 들어갑니다.
베이스의 머스크와 암브록산은 꿀뢰르 프리미어의 향을 피부에 부드럽게 정착하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향수를 뿌렸다! 하는 존재감보다는, 깨끗한 섬유 냄새와 살내음이 섞여서 나는 기분좋은 냄새 정도로 느껴집니다.
점원분이 "어른의 살내음"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탑에 서양배 노트가 달콤함을 주기는 하지만, 배 조각을 물에 살짝 담갔다 뺀 정도로 은은하고 투명한 단 레이어가 추가되는 정도라, 프루티한 향조가 들어갔을 때 으레 느껴지는 달달한 귀여움보다는 중성적인 청결감과 공기 같은 가벼움이 강조되었습니다.
비누와 청결감을 강조한 향들이 종종 파우더리함과 결합해 따스하고 포근한 무드로 가곤 하는데, 꿀뢰르 프리미어는 파우더리함이 굉장히 얇아서 전체 온도감이 오히려 뉴트럴~서늘한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마치 햇볕이 들어오긴 하지만, 방 안 공기는 에어컨 때문에 서늘한 듯한 온도감입니다.
전체적인 인상은 청결하고 깨끗한 비누 거품인데, 욕조에 부푼 거품처럼 풍성하고 두꺼운 느낌보다는 한두방울 부풀어 오른, 섬세하고 투명한 비눗방울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레 조 프리모디알에서 누군가에게 향수나 바디제품 선물을 한다면 아마 꿀뢰르 프리미어를 고를 것 같아요. 그만큼 누구나 좋아할 만한 깔끔하고 예쁜 향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좋아할 만한 향들은 무난해서 재미가 없기 쉬운데, 꿀뢰르 프리미어는 다른 레 조 프리모디알의 향들처럼 맡고 있는데 시시각각으로 전면에 나오는 향이 달라지는 듯한 변화무쌍한 느낌이 있기도 했습니다. 뻔하지 않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향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드문 예시를 봐서 신기했습니다.
꿀뢰르 프리미어 요약
분류: EDP
계열: 알데하이드, 플로럴
지속력: 4–6시간
한줄평: 서늘한 햇빛에 빛나는 섬세한 비눗방울
계절감: 봄, 여름, 초가을
분위기: 맑은, 차분한, 세련된, 쿨한 청결감

매카니크 앵튜티브
마찬가지로 슈퍼클래시크 라인에 속해 있는 매카니크 인튜이티브입니다. 이름을 직역하면 "직관적인 매커니즘/기계장치"인데요, 마치 기계 장치가 착착 맞아떨어지듯이, 직관적으로 서로 맞아들어가는 조합의 향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향을 맡아 보면 납득이 되는 작명이기도 했어요.

매카니크 앵튜티브 노트
Top note: 오스만투스, 블랙티
Middle note: 토바코, 럼
Base note: 통카빈, 바닐라, 레더
(공식 홈페이지 기준)
통카빈은 바닐라의 부드러운 달콤함에 아몬드 톤이 살짝 섞인 향입니다. 달콤하지만 끈적이지 않고, 따뜻하게 퍼지는 크림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매카니크 앵튜티브 향
매카니크 앵튜티브를 처음 분사하면 오스만투스의 살구 같은 달콤함이 아주 잠깐 올라오는데, 블랙 티와 곁들여져서 그런지 아주 발랄한 느낌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 오스만투스의 달콤함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데요, 곧이어서 치고 들어오는 럼과, 직후의 토바코의 강렬함에 바로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토바코와 럼이 얽히고 설키며 관능적이고 매캐한 느낌을 주는데, 여기에서 술 향과 담배 향이 올라오면서 퇴폐적인 느낌도 조금 납니다.
곧이어 통카빈과 바닐라에서 오는 따뜻한 달콤함이 올라오는데, 이 달콤함은 잼처럼 끈적이지 않고, 과일처럼 상큼하지도 않습니다.
촉촉함이 거의 없는, 바싹 마른 단 향이 럼과 토바코와도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이 마른 느낌이 토바코의 스모키함과 어우러져서 저에게는 타고 있는 장작에서 나는 냄새처럼도 느껴졌습니다. 제 손목에서는 여기까지가 향수를 뿌리고 5분 안에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되어서, 처음 뿌려보시는 분이라면 일정 간격으로 계속해서 다시 맡아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시시각각 향이 바뀌어서 신기했어요.
잔향은 토바코의 스모키함과 럼 특유의 술 향도 살짝 남아 있으면서, 바닐라와 통카빈에서 오는 따뜻한 달콤함이 미들 노트를 부드럽게 감싸 줍니다. 퇴폐적인 느낌은 덜해지고, 대신 고급스러운 나무 결과 따뜻한 달콤함 때문에 전체적으로 더 성숙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넘어갑니다. 레더는 배경에서 잔잔하게 머물렀어요.
홈페이지 설명에 "파리의 웅장한 호텔 살롱들을 거니는 상상 속으로 초대"하는 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 때문에 어떤 향일지가 너무 궁금했는데요, 현대적이고 화려하게 밝은 호텔보다는, 역는 중후한 호텔이 더 생각났습니다. 낮은 조도의 우드톤 라운지에 있는 연식 있는 가죽 소파, 천천히 스며드는 조명, 저 멀리 바에서 묻어나오는 술 향과 담배 향이 뒤섞인 공기가 떠오릅니다.
향들을 보면 굉장히 부담스럽고 강할 것 같은데, 잔향에서 따뜻하고 살짝 달콤하게 마무리하기 때문에 뿌리기 너무 부담스럽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담배 향, 술 향만 강조되는 향이 아니라, 각각의 노트들이 자리 잡아가면서 밸런스를 찾아가는 구조라 전체적으로 무겁기만 한 향은 아니었어요.
매카니크 앵튜티브 요약
분류: EDP
계열: 레더, 스모키, 우디
지속력: 6–8시간
한줄평: 달콤한 따뜻함으로 감싸지는 어두운 관능
계절감: 가을, 겨울
분위기: 성숙한, 고급스러운, 관능적인

미모사 슈퍼크리티끄
꽃을 주제로 향을 풀어낸 슈퍼크리티끄 라인에 있는 미모사 슈퍼크리티끄입니다.

미모사 슈퍼크리티끄 노트
Top note: 알데하이드, 시클라멘, 베르가못, 네롤리
Middle note: 자스민, 튜베로즈, 오렌지 블라썸
Base note: 미모사, 화이트 머스크, 암브록산
(공식 홈페이지 기준)
시클라멘은 겨울철 꽃인데, 식물 자체에서 추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개 합성된 플로럴 노트로 표현됩니다. 꽃 비누 같은 느낌과 함께 물기 머금은 부드러운 꽃향을 갖고 있어요. 쨍하거나 진한 화이트 플로럴이 아니라, 깨끗하고 약간 차가운 플로럴 느낌을 줍니다. 향수에서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밝고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모사는 부드러우면서 파우더리함도 함께 가지고 있는 플로럴 노트입니다. 달콤함도 가지고 있지만 과한 느낌은 아니고, 햇볕에 말린 꽃의 꿀 같은 은근한 단향입니다.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플로럴이에요.

미모사 슈퍼크리티크 향
미모사 슈퍼크리티크의 첫 분사에는 알데하이드의 쨍한 청결감, 시클라멘의 차가운 플로럴, 그리고 베르가못의 시트러스한 느낌이 어우러지면서 차가운 공기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 때 살짝의 단 향도 같이 느껴졌어요. 전반적으로 서늘하고 맑고 청초한 느낌이었어요. 꿀뢰르 프리미어에서는 알데하이드가 굉장히 강조되었는데, 미모사 슈퍼크리티크에서는 알데하이드가 다른 노트들과 어우러지면서 깨끗하고 청초한 느낌을 보조해주는 느낌으로 쓰였습니다.
이후에 미들 노트의 플로럴들이 올라오면서 우아한 느낌이 깔립니다, 여기에서도 저는 달달함이 살짝 유지가 된다고 느꼈어요. 자스민과 튜베로즈가 함께 쓰였을 때 으레 생각하게 되는 두텁게 크리미한 느낌이 있는데, 그보다는 화이트 플로럴 특유의 크리미함과 우아함을 아주 얇은 한 겹만 가미한 느낌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베이스 노트의 미모사가 뚜렷하게 올라옵니다. 미모사의 파우더리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느껴지고, 화이트 머스크와 암브록산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더해줍니다. 탑에서 시작된 아주 은근한 단 향이 여기에 와서는 좀 더 부드럽게 녹아드는 느낌이 납니다.
시향해본 레 조 프리모디알의 향들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예쁜 느낌이 강했던 향이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겨울의 끝자락에 열린 지중해의 결혼식", "마지막 눈송이가 미모사 꽃에 설탕을 뿌려놓는듯 내려앉았고, 이 섬세하고 화사한 부케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자스민 향은 봄의 시작을 알립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좋고 직관적인 설명을 찾기 어려운 향입니다.
처음에 알데하이드의 차가운 반짝임으로 곁들여진 차가운 톤으로 포문을 열고, 갈수록 포근하고 따뜻해지는 구조가 정말 눈송이가 살짝 내려앉아 있는 미모사 꽃과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아까 꿀뢰르 프리메어는 서늘한 느낌, 매카니크 앵튜티브는 따뜻한 느낌이라고 했는데 미모사 슈퍼크리티크는 재미있게도 서늘하게 시작해서 따스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미모사 수페르크리티크 요약
분류: EDP
계열: 플로럴, 파우더리
지속력: 4–6시간
한줄평: 차가운 눈꽃이 내려앉은 노란 미모사의 포근함
계절감: 봄, 초여름
분위기: 청초한, 포근한, 깨끗한, 화사한
레 조 프리모디알의 향들은 대체로 모두 굉장히 복합적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이나믹하게 변해서 맡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향도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너무나도 즐거운 체험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레 조 프리모디알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10ml 버전 향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향수를 많이 쓰는 사람의 경우 50ml, 100ml를 들였다가 가격적으로나, 소진기간으로나 부담스럽기 쉬운데 쉽게 입문할 수 있는 10ml가 있어 무척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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